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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냥이들은 정말 자유롭기만 할까요? 우리가 모르는 그들의 삶과 죽음

by 보라 향초 2025. 6. 1.

길고양이 한마리가 비를 맞으며 길거리에 슬픈 표정으로 앉아있다

 

“길냥이들이 자유롭게 사는 도시 속의 유유자적한 존재라고 생각하시나요?”
길가에서 햇살을 쬐는 고양이를 보면, 평화로워 보입니다. 그러나 그 겉모습만 보고 판단해도 괜찮을까요? 저는 반려견을 키우고 있고 고양이는 날카로운 눈매와 발톱을 세우는 모습이 너무 무서웠던 사람 중에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생각지도 않게 저희 집에 고양이  한 마리가 들어오게 됐고 그 사건은 제 마음을 180도 변하게 하였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던 편견이 무너지며 그 매력에 흠뻑 빠져서 고양이 봉사도 다니고 봉사에서 만난 분이 아이러니하게도 고양이를 못 키우겠다고 하셔서 지금은 고양이가 세 마리가 되었습니다. 제가 고양이를 키워보니 다른 길고양이 아이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너무나 안쓰러운 현실에 이 글을 작성하게 되었고 품종묘도 좋지만 길 위에 아이들이 한 마리라도 따뜻하고 편안한 가정으로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입양은 아니더라도 길 위에 아이들 밥자리에서 밥이라도 편히 먹을 수 있는 따뜻한 시선을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사실 대부분의 길고양이들은 유기묘이거나 중성화되지 않은 고양이들이 낳은 아이들입니다. 그들의 하루는 생존을 위한 전쟁이고, 죽음조차도 기록되지 않습니다.
길냥이는 우리가 만든 사회 속에서, 인간의 무관심과 책임 회피로 인해 고통받는 존재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길냥이의 탄생, 생존, 죽음까지 전 과정을 살펴보고 현실을 마주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이야기하려 합니다.

 

태어남부터 위기, 길냥이의 삶은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왜 태어난 순간부터 이토록 위험한 환경에 놓여야 할까요?”
대부분의 길냥이는 유기된 반려묘의 자식이거나, TNR이 되지 않은 길고양이 사이에서 태어납니다. 이들이 태어나는 장소는 하수구, 폐건물, 차 밑처럼 생명에 적합하지 않은 곳이 대부분입니다. 어미 고양이는 인간을 경계해 숨어야 하고, 새끼들은 돌봄 없이 병에 걸리거나 굶주리다 사망하기 쉽습니다.

이 시기의 새끼들은 면역력이 약해 감염병에 매우 취약하며, 눈조차 뜨기 전에 저체온증으로 죽기도 합니다. 생후 한두 달이 가장 큰 고비이며, 절반 이상이 살아남지 못합니다. 길냥이들이 태어나자마자 직면하는 고통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라, 인간 사회의 책임 회피로 인한 사회적 문제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근본적 해결은 TNR 중성화 확대입니다. 시민들은 고양이 구조 활동에 참여하거나, 임시 보호를 통해 생존 가능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조금만 관심을 갖는다면, 태어나자마자 버려진 생명들에게도 따뜻한 시작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성묘가 되어도 끝나지 않는 생존의 사슬, 녹록하지 않은 삶

“어른 고양이가 되면 좀 더 편해질까요?”
살아남은 길냥이들이 성묘가 되었더라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생존은 더 치열해집니다. 이들은 하루하루를 먹이를 찾아 돌아다녀야 하며, 쓰레기봉투를 뜯거나 사람 눈을 피해 도망 다니는 것이 일상이 됩니다.

여기에 자동차 사고, 인간의 학대, 독극물 사료 등 수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일부 지역에서는 길고양이를 해충처럼 취급해 고의로 다치게 하거나 급식소를 철거하기도 합니다. 결국 이 아이들은 하루하루를 불안 속에서 살아갑니다.

문제 해결을 위해선 지자체와 시민의 협력이 필요합니다. 고양이 급식소 설치, 겨울 쉼터 운영, 그리고 동네 고양이 보호활동은 더 이상 소수의 일이 아닙니다. 지역사회가 함께 길냥이를 존중하고 공존하려는 의지가 있을 때, 비로소 길 위의 생명도 보호받을 수 있습니다. 내가 싫어한다고 너무 미워만 하지 마시고 조금만 곁을 내주셨으면 합니다. 그들도 살려고 태어난 소중한 생명이기에 내가 길고양이로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존재가 아니기에 조금만 불쌍하다 생각하시고 그래도 너무 싫다 하시는 분들은 무심하더라도 해하는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누구에게도 기억되지 않는 고양이의 마지막... 죽음

“죽은 고양이는 어디로 갈까요? 누가 그 죽음을 기억할까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골목의 고양이. 대부분은 조용히 생을 마감합니다. 사고, 병, 굶주림으로 쓰러져도 그 죽음을 기록하거나 추모하는 사람은 드뭅니다. 지자체는 죽은 고양이를 일반폐기물로 처리하며, 애도나 존중은커녕 통계에도 포함되지 않습니다. 예전 TV에서 본인이 암에 걸렸는데도 길고양이를 돌보시던 분이 있었습니다. 며칠 눈여겨보고 있던 고양이가 있었는데 데려올 준비를 다하고 이제 정말 데려올 일만 남았는데 그 아이가 길에서 고양이별로 떠난 걸 보고 '그분이 정말 축하한다' 하면서 울던 게 생각이 납니다. 그분 말씀이 이제 고단한 길생활 끝낸 걸 축하한다는 의미로 그렇게 얘기한다고 하더라고요 그 말이 너무 슬퍼서 펑펑 울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래도 이아이는 행복한 편에 들 겁니다. 울어줄 사람도 이름도 장난감도 한번 가져보지 못하고 가는 아이들이 너무나 많을 테니까요

이런 현실은 단순히 동물 문제가 아닙니다. 사회가 생명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반영합니다. 생전에도 고통받던 고양이가, 죽음조차도 외면받는 현실은 우리가 다시 돌아봐야 할 윤리적 문제입니다.

해결을 위해선 공공장례, 유기동물 추모 공간, 고양이 죽음 신고 시스템 등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시민들도 무관심을 멈추고, 최소한 그 죽음을 목격하고 기억해 주는 문화가 자리 잡아야 합니다. 생명은 살아 있을 때뿐만 아니라 죽은 후에도 존중받아야 합니다.

 

글을 정리하며... 길냥이 문제는 우리의 책임입니다.

길냥이 문제는 길고양이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반려동물을 책임지지 않는 사회, 생명을 소모품처럼 대하는 도시의 민낯입니다. 우리가 눈을 돌리는 사이, 수많은 유기묘가 태어나고, 죽고 있습니다.

그러나 변화를 만드는 일은 결코 거창하지 않습니다. TNR 중성화 캠페인에 참여하거나, 구조 활동을 후원하거나, 유기묘 입양을 고려하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외면하는 길냥이는 바로 우리가 만든 사회가 낳은 존재입니다.

당신의 작은 관심과 실천이 그들의 삶을 바꿀 수 있습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바로, 길냥이를 위한 희망입니다.